[손안의 화원]의 뒷얘기

라디오 테러

40화에 들어갈 뻔했던 장면

그 왜 남시언이 전교방송으로 태윤이 찾는다고 광고했던적이 있잖아요. 원래는 좀 더 시리어스하게 썼다가 지운거임

2018년 2월 18일에 쓰다 만 '원래' ↓



"실종된 3학년 1반 이태윤 학생을 찾고 있어요. 태윤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저한테 말해줘요."


저질렀다. 저질렀다! 전교 방송에 대고 작은할아버지한테 반항했다. 바깥에 있는 성하의 얼굴에서 표정이 싸악 사라진다. 그러나 희승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순진하게 말했다.


"이태윤씨는 아파서 집에 돌아갔어요."

"아니. 태윤이는 여기 종교 있다고 언론에 제보하다가 실패해서, 장로님한테 보복당해 지금 어디 갇혀있거든."


이번엔 희승이도 움찔 몸을 굳히고 커다래진 눈으로 날 쳐다본다. 웃음으로 화답했다. 자고로 문제 해결의 첫단계는 문제의 인식이며, 덮어두기만 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난 방금 성례교의 비리를 성례교 신도들 전체에게 폭로했다. 손이 덜덜 떨린다. 나 잘한거 맞지?


"어? 그런, 그런 거 안 해, 우리는. 우리가 왜 보복을 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양, 희승이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동시에 유리창이 쾅 울렸다. 성하가 찢어진 스케치북에 글씨를 휘갈겨놓고, 주먹으로 유리창을 친거다.


'방송 꺼요'


희승이가 홀린 듯 스르르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희승이 손을 잡아 저지했다.


"장로님이 사랑의 묘약을 돈 받고 파는데 태윤이가 방해해서. 아마 그게 싫었나봐?"

"그건 사고 파는게 아닌데?"


쾅. 진동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성하는 한 번 더 유리창을 세게 쳤다. 슬쩍 곁눈질로 바깥을 확인했더니, 성하는 이마를 유리창에 댄 채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짐승과 기계 사이의 그 어떤 눈빛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시선에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눈 마주쳤다. 더 이상 기밀을 누설하면 저 애가 날 죽인다. 아니, 이미 성하는 스르르 유리창에서 멀어져 문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 할 일은 이제 끝났어. 이제 얌전하게 진행만 할게요!


"그, 그럼 아는 사람 나한테 말해줘요. 희..희승아. 이제 사연 읽을까?"

"아니야. 장로님은 나한테 그런 말 없었어. 그리고 사랑의 묘약은 신앙이 깊은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거잖아. 외부인한테 파는건 이상해." 


희승이는 생각에 깊이 빠져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아차, 큰일났다. 희승이는 내 편이 아니다. 이거야 말로 정말 과했다.

 너무 큰 사고를 쳤다. 밀폐된 녹음실에서 도망치려 하다간 바깥에 있는 성하에게 잡힐 것 같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송을 끄는 일? 그래서 성하가 진정하길 기도하기?


"음, 나중에 물어보지 뭐. 시언아 사연 읽자 사연. 남시언씨. 하루만에 엽서가 87통이 왔어요."


희승이는 마치 성하가 안 보이기라도 하는 것 처럼 태연하게 엽서 뭉치를 꺼냈다만, 녹음실 문이 덜컥덜컥 돌아간다. 바깥에서 성하가 문을 열려 한다. 희승이는 엽서 뭉치를 겁에 질린 나에게 건네면서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아이, 방송중에 들어오면 안 돼. 남시언씨는 사연을 읽어주세요."

"..으, 응. 그럼 사연.. 사연..."


부디 희승이가 성하를 진정시켜주길 바란다. 떨리는 손으로 엽서를 뒤적였다. 글자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온다. 희승이가 문에 매달려 작게 대화하는 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왜? 급한 일이야?"

"방송 끄라고 했잖아."

"바보야, 내가 방송부장이야. 솔직히 말해. 성하도 출현하고 싶었던거지?"


희승이는 정말 분위기 하나도 안 읽고 천진난만하게 자기 하고싶은 말만 하고 산다. 성하는 희승이를 그냥 밀치고 들어와서, 사냥감을 찾는 살인마처럼 위협적으로 걸어와, 내가 보는 앞에서 방송 스위치를 내렸다. 방송 꺼졌다. 난 망했다. 본의아니게 땀으로 흥건해진 손을 아기고양이 깃털에다 문질러 닦아버렸다. 


"그건 선대 교주가 하던 사업이었어요. 네가 감히."


알고 있었구나. 성하는 날 내려다보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심판했다. 눈이 돌아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공포감에 마른침을 꿀꺽였다. 내가 막 전학왔을때도 성하는 칼부림하다 이찬이 눈을 베어버릴 뻔 했었지. 그 후론 날 피해다니길래 마주치질 않아 잊고 있었다.

 성하는 위험하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희승이가 끼어들어 준거다.


"아! 성하 화났잖아. 그러게 이상한 말을 왜 해. 근데 성하도 잘못했어. 방송을 막 끄면 어떡해."


성하는 눈동자만 기계처럼 굴려 희승이를 쳐다봤으나, 희승이는 진짜 세상에서 제일 순진한 얼굴로 성하의 손을 덥썩 잡고는, 내 가슴에 턱 올려버렸다.


"빨리 시언이 가슴 만져서 기분풀어."

"...."


내...가슴위에 안정감있게 착지한 성하 손. 성하도 나도 고장난 것 처럼 말을 잃었다. 삽시간에 성하의 흉흉하던 기운이 흔적도없이 흩어진다.


"그리고 사과방송도 해. 너 때문에 방송사고 났잖아."

"....와, 왕...왕자님... 왕자님 가슴...."

"...."


...만져서.. 기분이 풀린다면... 성하는 폭탄 터진 것 처럼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고,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넘어졌다. 책상이 무너지고 87통의 엽서가 흩어져 방송실에 눈부시게 흩뿌려진다.


"제가 왕자님 가슴을 왜 만져요!!!"

"은태가 그랬어. 화났을땐 가슴을 만지면 화가 풀린대."


선도부장이 참 좋은 거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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