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의 화원]의 뒷얘기

초면에 프로포즈하는 루트

결혼해줘 아gi다람쥐야

2018년 5월 17일에 씀

현서의 혼삿길을 처음 막았을 때 이렇게 될 뻔 했음



나도,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아기다람쥐를 폐허가 된 교실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 

책상 의자 치우고, 몸을 둥글게 말고 훌쩍이는 현서 어깨를 토닥였다. 신도도 아닌 애가 순결을 잃었다고 울 줄은 전혀 몰랐다. 그거 잃어버릴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성희롱한건 사실이라 무릎꿇고 바닥에 머리 박아도 모자라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꺼지라구우우...!!"


현서는 내 손을 세게 쳐내고, 바닥을 기듯이 달려가 전기충격기를 낚아채 나를 향해 겨냥했다. 아니 왜 또?! 나 이번에야 말로 나가야 하는건가?

파란색 스파크가 다시 한 번 섬뜩하게 흩어진다. 아기다람쥐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소리쳤다.


"이젠, 이젠 너도 죽고 죽는 수 밖엔...!"

"현서야 너무 극단적,"

"닥쳐! 내, 내 소중한... 그걸 짓밟았으면, 목숨정도는 내놓아야 할 거 아냐!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그리고 현서는 살기등등하게, 나를 향해 똑바로 달려들었다. 설마하던 2라운드! 그렇지만 이번엔 피하지 않는다. 로맨티스트로써 물러설 수 없다. 나는 사랑을 하기로 했다.


"내가 책임질게!!"

".......어?"


전, 전기가... 내 눈동자 바로 앞에....서 기적적으로 멈췄다. 다리에 힘 풀려서 휘청이는 김에, 현서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책임질게. 나랑 결혼하면 되잖아."

"네, 네가... 네가 뭔데 나랑 결혼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현서는 전기충격기를 떨어트렸다. 설마 내가, 청혼할 거라 예상도 못 한 걸까. 물론 이건 정식 프로포즈가 아니다. 나는 항상 꽃다발과 로맨틱한 이벤트가 함께하는 극적인 청혼을 꿈꿔왔다. 이건 그냥 고백 레벨이다!


"사귀는거부터 시작하자. 결혼을 전제로."


늘 사랑만이 해답이다. 눈물로 아롱진 눈이 점점 크게 뜨이고, 귀와 목까지 새빨갛게 물드는게 예쁘다. 말보단 몸으로 전하는게 더 낫다. 현서의 안경을 벗겼다.


***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기절한 현서를 안고 태윤이랑 찬혁이에게 사과했다. 아니, 나도 키스했다고 현서가 깨꼬닥 기절할 줄은 예상 못 했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다. 고작 그 정도로 장가를 갈 수 없게 된 아기다람쥐다. 키스까지 했으니 혼절하는것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박살난 과학 동아리실을 책임 질 사람은 나밖에 안 남게 된 거고. 


"무슨 일이야... 태풍 분 거 같아..."


태윤이가 허망하게 아무 의자에나 앉는 동안, 찬혁이는 내가 가져온 교장선생님의 스케쥴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저거 보여주고 칭찬받으러 여기 온 거였다. 설마 교실이 풍비박산나고 현서는 기절하고 현서가 고치려던 브라운관 TV와 현서의 순결이 돌이킬 수 없을만큼 망가질 줄은 전혀 몰랐다. 이젠 칭찬이고 뭐고 필요없어...


"현서 방 몇호실인지 알아..? 눕히고 올게."

"203호."


스케줄표에 집중하던 찬혁이가 짤막하게 대꾸했다. 옆방이네?


"금방 갔다올게!"

"가지 마. 여기 있어. 고 아새끼는 넘기라."


찬혁이가 설레는 말을 하며 내 팔을 덥썩 잡고, 무심하게 내 관절을 툭툭 쳐 무릎꿇렸다. 기절해 축 늘어진 현서까지 뺏겼다. 찬혁이는 널브러진 담요로 현서를 대충 둘둘 말아 아무 의자에나 대충 앉혔다. 그리고 다시 스케쥴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찬혁이 너무 세다. 찬혁이라면 현서정도는 간단하게 제압했을......헉, 상상 속에서 아기고양이들을 싸움붙이지 말자. 실제로도 싸우는 애들인데 굳이.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의자나 모아다 간이 침대를 만들어 현서를 눕혔다. 태윤이는 옆에서 책상을 밀어 교실 정리하는걸 도와줬다. 역시 믿을 사람은 태윤이밖에 없다.


"학생회장이나 선도부장한테 들키면 벌점 50점 정도 받을 것 같은데... 비밀로 해줄게...."

"고마워..."

"무슨 섹스를 했길래 교실이 이렇게 된거야?"

"............"


저 당연한걸 물어본다는 평온한 얼굴. 믿을 사람은 태윤이밖에.... 과연 그럴까?


"동무들. 내래 뭐 찾은 것 같지비."


다행히 찬혁이가 대화를 끊었다. 찬혁이는 칠판에 대강 학교 지도를 그렸다.


"여기가 구교사고, 여기가 시언이가 나를 따먹은데고, 여기가 이사장 동상이라고 하면은."

"잠깐만, 그건 왜 표시"

"그런데 여기서 여기까지 비밀통로가 있지 않안?"


비밀통로, 가 있었나. 태윤이가 갑자기 퍼뜩 일어나더니 달려가 분필로 선을 주욱 그었다.


"어, 어. 있어."


그러니까, 교장선생님은 주기적으로 뒷문을 통해 연구소 건물을 방문하는데, 비밀통로를 썼다면 사실 연구소 말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찬혁이는 그런 추리를 했다. 알고있는 비밀통로를 표시해가며 시간대와 장소를 맞춰 내 아기고양이들은 무언가를 척척 추론해냈다. 

머리 좋은 아기고양이들. 나는 머리 나빠서 고개 끄덕이며 감탄만 하고 있다. 늘 그랬듯 내 역할은 그냥 치어리더다.


"찬혁이 멋있어. 근데 나랑 섹스했던 장소를 왜 하트 모양으로 표시"

"그러면 기숙사 지하...? 근데 기숙사엔... 어, 음. 내가 알기론 아무것도 없어. 내가 모르면 아마 정말 아무것도 없을거야..."

"기래? 확신할 수 있는가?"


찬혁이가 날카로운 눈으로 반문하자, 태윤이가 움찔 떨었다. 진지한 모습의 아기고양이들 멋있고 대단하다.


"근데 하트모양"

"으윽...."


그러다 기절했던 현서가 깨어났다. 나는 어차피 도움이 안 된다. 얼른 달려가 끌어안았다.


"현서야! 깼어? 정신이 들어?"

"뭐야, 나 왜..."


현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안경 돌려줬다. 현서는 게슴츠레하게 촛점을 맞추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몇 번 애매하게 눈을 깜빡였다.


"현서야?"

".......서방님?"


.....음... 음? 스트레스를 너무 과하게 받아서 환청이 들리나. 사태파악이 안 되어 멍청하게 되물었다.


"응?"

"서방,"


훅, 섬뜩한 바람이 불었다. 무언가 폭풍같은게 내 코 끝을 스치며 현서를 덮쳤다. 거의 동시에 퍼진 현서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심장을 서늘하게 한다. 숨이 턱 막혔다. 소리가 난 창문 쪽으로 달려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현서야!"

"아악! 잠깐, 잠깐잠깐, 이 미친놈아, 야, 야!"


현서가... 군용 밧줄에 묶여 창문 밖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잠깐만. 5초도 안 지났는데? 옆에서 찬혁이가 손을 탁탁 털며 무심하게 말하는거다.


"어마. 손이 미끄러졌네."

"......."

"풀어줘, 헉, 야, 나, 나 떨어질 것 같아! 너 미친거 아니야? 이 씨발새끼, 진짜 너 언젠가...!!"


건물 외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버둥거리는 현서를 두고... 찬혁이는 이렇게나 태연하다. 역시 찬혁이 너무 세다. 나를 무시무시하게 몰아붙였던 현서가 한방에 넉다운 됐다. 그러니 나같은 것도, 쉽게 당하는건 당연하다. 찬혁이가 척척 걸어와 느긋하게 나를 밀어 의자에 앉히는데 무슨 저항할 틈도 뭣도 없이 물흐르듯 제압당했다. 무슨 무림 고수도 아니고...!


"찬혁아. 손이 너무 스케일 크게 미끄러지는 거 아니야...? 현서 풀어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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