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것들

평범한 ■■세 커플

다음편 없음

"나랑 섹스 안 해주면 자살할거야."


박성현은 이러한 종류의 말을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보았다. 주로 인간시장에서 팔리지 못해 추하게 늙고 만 예술계열 아저씨-할아버지들이 기가 약하고 거절을 잘 못 하는 젊고 예쁜 여자와 섹스하고 싶을때 협박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 협박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여자도 자주지 않는 것이다.

인기가 많은 박성현은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되도록이면 가까이 가고도 싶지 않았다. 잘못해서 저렇게 늙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삼촌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박성현은 그 뉴스를 보는 순간, '삼촌이라면 그런 말을 할 법 하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삼촌같은 사람은 자신을 끔찍히 아끼기에 자살같은걸 할 리가 없다. 기사에서는, 119에 연락하여 자살을 막아달라고 요청하겠다고 고지하는 것이 그의 삼촌같은 사람을 퇴치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설명까지 나와있었고, 그 때에 박성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어쨌거나 박성현은 본인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본인이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그것은 그의 상상을 아예 벗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준비되지 않을 때에 예상치 못한 일이 들이닥치는 법이다.

그는 듣고 말았으니.

게다가 진짜로 자살할 것 같았다.

박성현은 기겁해서 그녀의 팔목을 잡았는데, 정신이 좀 돌아버린 사람은 원래 힘이 세다. 그녀는 어디서 솟아난건지 모를 힘으로 박성현을 엎어치고, 피가 흐르는 손으로 커다란 유리조각을 들어 그녀의 경동맥에 들이댔다.


"빨리 결정해."


그녀가 주륵주륵 울면서 그를 다그쳤다. 박성현은 혼란스러웠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저 민여운이 갑자기 돌아버려서 저런 협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이상스러운 일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민여운은…… 예뻤다.

이미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지만 민여운은 아직 아무런 소속사가 없었다. 민여운은 일주일에 한 번씩 길거리 캐스팅 명함을 받는다. 그녀가 하교할 때 쯤에는 그녀와의 나이차를 고려하지 않고 재력으로 밀어붙이려는 구혼자들이 줄을 이었다. 꽃다발은 기본이고, 향수에, 시계에, 보석에, 어디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선물을 그녀는 매일 받았던 것이다. 아마 그 구혼자들도 그런 드라마를 보고 선물을 고른 것이겠지만은.

그들은 박성현의 삼촌과는 좀 다른 타입이었지만 아무튼 사귄다면은 채 한 달이 못 되어 따귀 정도는 때릴 것 같은 인상이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 구경만 하던 박성현도, 민여운이 그 구혼자들의 선물만 받고 다른 접촉은 안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엄청났다.

민여운은 요란하게 연애를 하지 않았으니, 어디선가 연예인이나 아이돌같은 사람을 찾아 조용히 사귀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했을 뿐이었다.

더욱이 그 뿐만이 아니고, 민여운은 공부까지 잘했다. 그녀는 성적에 집착했다. 마치 성적이 떨어지면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날 것 처럼 초조하게 펜을 놀렸다. 쉽고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이 학교에서 벌써부터 S대 확정인게 딱 둘 밖에 없었다. 전교 1등, 민여운. 전교 2등, 박성현.

박성현의 경우에는 민여운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서 노력한 것이었지만은.

운동도 잘 한다고 한다면 믿겨지겠는가……. 박성현도 열심히 그녀를 따라 문무를 겸비하려 발버둥쳤지만 도저히 안 됐다. 다른 종족인 것 같았다.

하여간, 그렇게 대단한데 민여운은 아무도 사귀고 있지 않았나보다. 그녀가 원한다면 목숨 안 걸어도 냅다 옷벗을 남자가 이 학교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텐데.

도대체 왜 민여운같은 사람이 폐급 예술가나 할 법만 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에게.

막 울면서.

예삿일이 아니었고, 박성현은 무엇보다도 민여운의 몸에서 피가 한 방울이라도 손실되는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이미 예술품같은 그녀의 손에 상처가 났다. 학처럼 길고 아름다운 목에도 상처가 날 상상만 해도 자신의 피가 몽땅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우선 그녀를 말리기로 하였다.


"일단 그거 내려놓고…."

"닥쳐!"


민여운이 표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박성현은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왜. 왜?


"이 자리에서 죽을거야. 당장 결정해. 5, 4…."

"할게! 당연히 할거야!"


박성현이 다급히 외쳤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도 민여운은 표정변화가 없었다. 유리조각도 여전히 위협적으로 들이댄 채였다.


"못 믿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대체 왜?"

"너희들이, 씨발, 나만 보면 발정나는거 알고있어."


그는 그녀의 입에서 욕설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놀랐다. 기실, 그가 그녀와 이렇게 오랫동안 말을 섞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민여운은 늘 하늘에 떠다니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늘 차가웠고, 어딘지 항상 방어적인 태도가 있었다. 그 미스테리한 매력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었는데.

게다가 여전히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었다. 민여운은 당장이라도 통곡할 것 처럼 눈물이 주륵주륵 새어나오고 있었고, 유리조각을 쥔 손에는 피도 안 통하는지 시체처럼 창백한데다 심상치않게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거는 진짜 119에 신고해야 한다.

박성현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나마 희망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기회를 보아 신고하자. 소방대원들 살려주세요.

그러나 민여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타겟이 그녀 자신에서 그에게로 옮겨갔다. 박성현은 사자와 마주친 생쥐처럼 본능적인 공포가 솟아남을 느꼈다.


"네 눈을 찌르면 되겠네."


무엇이 된단 말인가. 박성현은 거의 비명을 지르는 것 처럼 말했다.


"우리 집 올래?"


그녀가 우뚝 멈췄다.

박성현은 벌벌 떨면서 빠르게 말했다.


"우, 우리집에 지금, 아, 아무도 없어. 섹스고 뭐고… 다 할 수 있을거야. 시키는대로 다 할게."


소변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박성현은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는 순간, 누구가 됐든 그녀는 찌를거다. 그러한 예감이 들었다.

민여운은 박성현을 아주 서늘하게 내려다보다가, 유리조각을 들고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앞장서."



이것이 정녕 ■■세 남녀 둘이 섹스하러 갈 때의 분위기란 말인가.

게다가 민여운은 아직 유리조각을 놓지도 않았다. 박성현은 본인도 울고 싶어졌지만, 울음을 꾸욱 참으며 가방을 챙겼다. 민여운의 것까지 두 개를 들었다.

이 짓거리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하기사, 어디서 일어났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가 큰 길로 나서려 할 때 그의 뒤에서 귀신처럼 차가운 명령이 떨어졌다.


"사람 없는 데로 가."


박성현은 약간… 눈물이 좀 났다. 그런데 뒤에서 살벌하게 지켜보는 시선이 너무 무서워 눈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박성현은 돌아서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고 중간에 몇 번이고 소리지르면서 옆으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의 아이돌이자 모델이고 여신인 민여운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시간은 자비가 없었고, 둘은 박성현의 집에 도착했다. 박성현은 현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우선 어떻게 해야 신고할 시간을 만들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민여운은 현관부터 박성현을 걷어찼다.


"벗어."


아직 신발도 안 벗었다.


"아니면,"


민여운이 아직도 유리조각을 들고 있다. 박성현은 그녀가 뒤에 덧붙일 말이 무엇이든 듣고싶지 않아, 말을 가로챘다.


"하, 할게! 진정해. 시키는대로 다 하, 한다니까."


박성현은 패닉하여 신발 벗는 것도 잊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교복 단추부터 벗으려다가, 그냥 모르겠다 싶어서 옷을 뜯었다. 유리조각을 든 자살고위험군 및 반사회적 범죄자 외에 기타등등 폭탄같은 그녀를 앞에 두고는 1초도 아까웠다.

여름이었고, 박성현은 셔츠 안에 받쳐 입은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스포츠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따라 시작했던 운동도 이제 2년째다. 그 성과가 민여운의 앞에 펼쳐졌다.

민여운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유리조각을 뒤로 던지고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목덜미가 깨물리고 가슴이 마구 주물러졌다. 사춘기 남자에게 이건 너무 갑작스럽고 지나친 자극이라, 박성현은 비명 비슷한 것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가 현관문에 가로막혔다.

진짜로…. 진짜로 섹스하러 왔다. 그는 겁에 질렸었고 그녀는 그보다 더더욱 공포에 질려있었지만 정말 이것이 성립하였다. 박성현은 혼란스러워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가, 문득, 허벅지에 닿는 감각으로 눈치채고 말았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무언가 뜨겁고 단단하며 커다란 것이 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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